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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시트로엥이 파리에서 빛을 냈다.
모터트렌드홍기현 기자 2026.08.26

파리하면 떠오르는 것? 크루아상, 루브르, 몽마르트, 베르사유… 많은 이름이 생각나지만, 그중 누가 뭐래도 제일은 에펠탑이다. 도시의 상징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명소. 매년 수많은 여행객이 오직 그 철제 탑을 보기 위해 파리를 찾는다는 사실만 봐도, 에펠탑이 지닌 위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인류사에 손꼽히는 이 건축물을 하나의 광고판으로 만든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괴짜, 시트로엥(Citroën)이다.

뜬금없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 묻고 싶다. 광고란 무엇인가. 한자로 풀면 넓을 광(廣), 알릴 고(告). 말 그대로 넓게 알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1925년, 시트로엥은 이 물음에 가장 훌륭한 답안을 제출했다. 바로 에펠탑 조명을 활용해 자사의 브랜드 이름을 밤하늘에 새긴 것이었다. 당시 자동차 광고를 상상해보자. 포스터, 신문, 잡지, 브로슈어 등 브랜드를 알리는 수단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멋들어진 차, 그리고 삽화 속 인물들이 지면을 가득 채웠을 것이고.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에펠탑을 시트로엥의 이름으로 물들이다니. 창의성은 물론, 확고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이 대담한 마케팅은 한 조명 기술자의 엉뚱한 구상에서 비롯됐다. 192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현대장식·산업미술박람회, 훗날 ‘아르데코’로 불릴 이 행사를 앞두고, 페르낭 자코포치가 에펠탑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앙드레 시트로엥에게 제시한 것이었다. 시트로엥은 이 무모한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기술적 가능성과 대대적인 홍보 효과를 읽어냈다.

스케일은 지금 봐도 놀랍다. 1925년 7월 4일 밤, 에펠탑에는 여섯 가지 색의 전구 25만 개와 6000m의 전기 케이블이 설치됐다. 조명이 켜지자 40초 동안 아라베스크, 별똥별, 혜성 같은 연출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일곱 글자가 떠올랐다. ‘C.I.T.R.O.Ë.N.’ 그리고 그 아래에는 브랜드의 더블 셰브런(Double Chevron)이 빛났다.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을 올려다봤고, 밤하늘에 떠 있는 시트로엥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이 캠페인이 흥미로운 이유는 ‘자동차를 팔기 위해 자동차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무슨 말이냐고? 당시 사람들에게 시트로엥은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전기와 철, 도시와 기술을 이용해 시대의 풍경을 바꾸는 회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제품 설명보다 강한 건 브랜드의 존재감이며, 시트로엥은 그것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했다. 단지 에펠탑 위에 철자를 올림으로써 제품 이미지가 아닌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 조명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는 1934년까지 이어졌고, 10년 가까이 파리의 밤을 밝혔다. 아직 인쇄 광고가 주류였던 시절, 시트로엥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매체로 삼았다. 포스터 한 장 대신 파리의 밤을 브랜드의 무대로 바꾼 것. 앙드레 시트로엥의 브랜딩 방식은 지금 봐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발상에 가깝다.

1925년의 파리는 예술가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피카소와 마티스가 여전히 시대의 중심에 있었고, 소니아 들로네는 색과 기하학을 거리와 패션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그날 파리에 있던 예술가들도 에펠탑을 보았을까? 센강 너머로 떠오른 일곱 글자, C.I.T.R.O.Ë.N.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을 광고가 아니라, 파리의 밤하늘에 그려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앙드레-귀스타브 시트로엥(André-Gustave Citroën), 1878~1935

1919년 자신의 이름을 건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을 설립하고, 유럽 자동차 산업에 포드식 대량 생산 방식을 적극 도입한 인물이다. Type A를 시작으로, 판매망과 서비스 체계, 카탈로그와 할부 판매 등 현대적 자동차 판매 시스템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대륙 횡단 원정, 어린이용 미니어처 자동차, 항공 광고, 1925년 에펠탑 조명 광고를 통해 시트로엥을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했다.

 

글 | 홍기현 에디터      사진 | 시트로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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